신창 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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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창 맹씨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의 아들 경부의 후손으로, 맹자의 51세손 맹의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충렬왕 때 신창백에 봉해진 맹의의 후손들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많은 인물을 배출했는데, 맹희도, 맹사성, 맹석흠 등이 대표적이다. 신창은 본관이며, 아산시에 속한 지명이다. 신창 맹씨는 관북파, 신창군파 등으로 분파되었으며, 아산 맹씨 행단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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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원
맹(孟)씨는 중국 평릉(平陵: 협서성 관중도)에 연원을 둔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15대 임금인 환공의 아들 경부(慶父)의 호가 맹손(孟孫)이라서 성을 맹(孟)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조(1세조)는 맹자의 51세손인 맹의(孟儀)이다. 맹의는 고려 충렬왕 때 예부시랑을 거쳐 예부전서에 올랐고, 고려 충선왕 때 신창백(新昌伯)에 봉해졌다.
신창(新昌)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굴직현(屈直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기량현(祁梁縣)으로 고쳐 온정군(溫井郡)에 속하게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신창을 신창현(新昌縣)으로 개칭하였고,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온수현(溫水縣)과 합하여 온창(溫昌)이라 하였다가 신창현이 되었다. 1917년 아산군 신창면이 되었고, 1995년 아산시 신창면이다.
신창 맹씨는 2세손 맹복의 관북파, 7세손 맹석흠의 신창군파, 맹석경의 사직공파, 맹석준의 호군공파 등으로 분파되었다.
신창 맹씨의 원시조는 중국 전국시대의 유명한 사상가인 맹자이다. 『신창맹씨세계(新昌孟氏世系)』에 의하면, 888년(신라 진성여왕) 맹자의 39세손 맹승훈(孟承訓)이 당나라 한림원 오경박사 자격으로 신라에 입국하였다고 한다.
3. 역사
맹의의 손자 맹희도(孟希道)는 공민왕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한림어사(翰林御史), 수문전 제학(修文殿提學), 한성윤(漢城尹)을 지냈고, 맹희도의 아들 맹사성(孟思誠)은 조선 세종 때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4. 본관
5. 분파
5. 1. 주요 분파
신창 맹씨는 2세손 맹복의 관북파(關北派), 7세손 맹석흠(孟碩欽)의 신창군파(新昌君派), 맹석경(孟碩卿)의 사직공파(司直公派), 맹석준(孟碩俊)의 호군공파(護軍公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6. 인물
신창 맹씨 가문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여러 주요 인물을 배출했다. 고려 시대에는 맹의, 맹희도, 맹사성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맹석흠, 맹세형, 맹주서, 맹만시, 맹만택, 맹지대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에는 맹은재(11대 국회의원), 맹형규(전 앵커, 3대 행정안전부 장관, 15~17대 국회의원), 맹정주(14대 조달청 차장, 민선4기 서울 강남구청장), 맹상훈(배우), 맹성규(3대 국토교통부 제2차관, 20대 국회의원), 맹정호(민선7기 충청남도 서산시장) 등이 있다.
6. 1. 고려
맹자의 51세손인 맹의를 시조(1세조)로 한다. 맹의는 고려 충렬왕 때 예부시랑을 거쳐 예부전서에 오르고, 고려 충선왕 때 신창백(新昌伯)에 봉해졌다.[1]맹의의 손자 맹희도(孟希道)는 공민왕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한림어사(翰林御史), 수문전 제학(修文殿提學), 한성윤(漢城尹)을 지냈고,[1] 맹희도의 아들 맹사성(孟思誠)은 조선 세종조에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다.[1]
- 맹희도(孟希道) :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좌윤(漢城左尹),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등을 지내고, 우의정(右議政)에 증직되었다.[1]
- 맹사성(孟思誠, 1360년 ~ 1438년) : 맹희도의 아들. 1386년(고려 우왕 12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1427년(조선 세종 9년) 우의정을 거쳐 1432년 좌의정에 올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1]
6. 2. 조선
맹자의 51세손인 맹의(孟儀)를 시조(1세조)로 한다. 맹의는 고려 충렬왕 때 예부시랑을 거쳐 예부전서에 오르고, 고려 충선왕 때 신창백(新昌伯)에 봉해졌다.맹의의 손자 맹희도(孟希道)가 공민왕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한림어사(翰林御史), 수문전 제학(修文殿提學), 한성윤(漢城尹)을 지냈고, 맹희도의 아들 맹사성(孟思誠)이 조선 세종조에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6. 3. 현대
7. 과거 급제자
신창 맹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7. 1.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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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조선
신창 맹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6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사마
- 맹사겸(孟思謙)
; 무과
- 맹귀생(孟貴生) 외 다수
; 음양과
- 맹숭업(孟崇業) 외 다수
7. 2. 1. 문과
신창 맹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6명을 배출하였다.
다음은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명단이다.
7. 2. 2. 무과
7. 2. 3. 생원시
7. 2. 4. 진사시
7. 2. 5. 음양과
7. 2. 6. 음관
8. 집성촌
9. 문화재
아산 맹씨 행단: 대한민국 사적 제109호로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다. 고택은 ㄷ자형 맞배집으로 건축면적 93m2이며, 지붕 위의 공포(栱包)는 단익공(單翼工)에 주심첨차(柱心檐遮)가 조선 초기 양식을 띠고 있다. 가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맹사성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맹사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정자도 있다. 고려 말기 무신 최영이 지은 집으로 그의 손주사위인 맹사성의 부친 맹희도가 물려받은 후 수백 년간 대를 이어 살아오며 보존되었다. 경내에는 맹사성·황희·허형 등 3정승이 심었다는 행단이라는 은행나무가 있다. 또 옥피리·옥비녀·옥벼루·표주박·인장 등의 맹씨 가문 가보도 전해지고 있다.[1]
10. 항렬자
11. 인구
2015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신창 맹씨는 19,971명[3], 온양 맹씨는 1,483명으로 총 21,454명이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는 신창 맹씨 18,147명, 온양 맹씨는 2,034명으로 총 20,181명이었다. 1985년에는 신창 맹씨 16,465명, 온양 맹씨 827명으로 총 17,292명이었다.
참조
[1]
서적
Academy of Korean Studies 신창맹씨 新昌孟氏
http://terms.naver.c[...]
Academy of Korean Studies
[2]
학술지
A Comparison of the Korean and Japanese Approaches to Foreign Family Names
http://www.sciea.org[...]
2014
[3]
웹사이트
KOSIS
https://kosis.kr/sta[...]
2022-11-19
[4]
웹사이트
맹씨(孟氏) 본관(本貫) 신창(新昌)입니다.
http://www.findroot.[...]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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